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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2022.09.30

by 민용준

    ‘인생은 아름다워’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보기 드문 뮤지컬 영화이자 촌스럽지만 마음을 울리는 진짜 신파.

    <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뮤지컬 영화는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르였다. 일찍이 2006년에 개봉해 도전적인 성취를 거뒀다고 평가받는 <삼거리극장>을 제외하면 딱히 언급할 만한 작품 자체가 없다. 만듦새가 다소 민망했지만 <구미호 가족> 같은 영화가 그나마 뮤지컬 영화로 기획된 몇 안 되는 결과물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뮤지컬 영화가 나오지 않았던 것인지, 못했던 것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화려한 쇼맨십이 돋보여야 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성상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필요한 만큼 한국에서 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종욱 찾기>처럼 인기를 얻은 창작 뮤지컬이 되레 뮤지컬 형식을 덜어낸 영화로 제작됐다는 전례 역시 이런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 자체로 야심만만한 기획처럼 보인다. 큰 인기를 모은 대중적인 가요를 배우의 육성으로 다시 부른, 소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일컫는 팝 뮤지컬 형식으로 제작된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이문세의 ‘조조할인’으로 시작해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으로 맺기까지 10곡의 노래가 등장한다.

    원곡이 아니라 배우가 직접 부르고 녹음한 버전이 쭉 이어진다. 댄서블한 노래에 맞춰 다채로운 군무가 펼쳐지기도 하고, 진지한 발라드로 한껏 분위기를 잡기도 한다. 결국 뮤지컬 영화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노력이 중요했다. 실제로 주연을 맡은 류승룡과 염정아는 1년 이상 춤과 노래를 배우며 뮤지컬 배우에 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만큼 배우들의 공헌이 큰 작품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로베르토 베니니가 주연과 연출을 맡은 유명한 동명 영화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 세연(염정아)의 첫사랑 찾기에 동참하는 남편 진봉(류승룡)의 여정을 따라가는 로드무비 형식이 가미된 뮤지컬 영화다. 아내의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편이라니, 자상할 것만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뚝뚝한 것을 넘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윽박과 호통으로 매 순간 아내를 압박하는 데 이골이 난 남편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결혼한 것인지 그 관계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렇게 남편의 괄시가 일상이 된 세연은 지대한 관심에 그저 무심하게 대하기만 하는 고 3 수험생 아들과 좀처럼 속을 알 길은 없고 그저 반항적인 무시만 거세지는 딸은 마음에 체증을 더한다.

    시작부터 지극히 뻔한 전개가 예상되는 이야기임에도 의외로 뻔하지 않게 흘러간다고 느껴지는 건 역시 의외로 세연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다는 첫인상으로 다가오는 남편 진봉 때문이다. 아내의 말기 암 시한부 선고를, 버스를 잘못 타서 병원에 늦게 도착한 아내 대신 듣게 된 남편은 그저 속이 상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헌신적인 배우자로 새롭게 태어나는 대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알려줄 것은 제대로 알려달라 호통을 친다.

    외출복을 바닥에 던져두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 와중에 아내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첫사랑을 떠올리고 독립을 선언한다. 남편의 무뚝뚝함은 아내의 첫사랑 만날 결심에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형적인 신파의 예상 경로에서 뜻밖의 웃음을 유발하며 감정을 중립 기어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이는 아무래도 류승룡이라는 배우의 기질 자체가 온전히 반영된 덕분인 것으로 보이는데, <인생은 아름다워>가 배우들의 매력과 능력이 여러모로 힘을 발휘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진봉이라는 인물은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이 완전히 다른 인물로 다가온다. 이것은 인물이 그만큼 변화하고 성숙한 덕분이라기보다는 영화가 인물의 성격 자체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 탓에 가깝다. 좀 더 과격하게 논하자면 낡고 진부하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겉바속촉’ 같은 남편을 의도한 것 같지만 극 초반의 진봉은 지나치게 고루한 가부장 캐릭터로 묘사되는 것 같다. 그 때문에 극 초반부와 후반부의 진봉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변화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변화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설정 자체로 인식되는 것 같다. 캐릭터 연출에 실패한 인상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배우의 매력과 능력이 그런 한계를 무마해버린다. 극 초반의 필요악에 가까운 뻣뻣한 설정을 서서히 벗고 점차 희화화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진봉이라는 인물은 류승룡 특유의 박력 있는 웃음기를 입고 보다 선명해진다. 첫사랑을 찾아 목포로, 부산으로, 보길도로 향하는 세연의 진지한 여정이 심심하지 않은 건 MSG 같은 웃음기를 뜬금포처럼 투척하는 류승룡의 순발력 있는 리액션 덕분이다.

    그리고 뮤지컬 신에서 청량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염정아의 호연은 단연 돋보인다. 호소력 짙고 표현력 좋은 보컬과 시원시원하면서도 명확하게 안무를 소화하는 염정아는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적 야심을 지닌 <인생은 아름다워>의 화룡점정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뮤지컬 시퀀스의 모든 순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다. 뮤지컬 영화는 언제 버튼이 눌렸는지도 모르게 뮤지컬 시퀀스로 전환하고 진입하는 것이 관건인데, <인생은 아름다워>는 종종 그 타이밍이 급작스럽거나 느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리얼리티와 판타지의 간극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서 그 전환이 다소 민망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뮤지컬 시퀀스의 완성도 자체는 상당히 높은 편이며 해당 시퀀스마다 선택된 노래와 상황의 감정이 어느 정도 밀착하는 인상이라 보고 듣기에 거북함은 없고 매번 적절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좋은 볼거리를 이루는 동시에 대사 대신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기능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그 모든 과정이 일회성 쇼맨십으로 휘발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축적된다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최후반부의 ‘뜨거운 안녕’ 시퀀스가 역설적인 페이소스로 감정을 충분히 끌어올린다고 느껴지는 것 역시 그 모든 과정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플래시백 구조 안에서 배우의 연령대를 의식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식이다. 세연이 찾아가는 첫사랑 박정우(옹성우)와 함께한 10대의 세연은 젊은 박세완이 연기하지만 대학 시절에 만난 진봉과 함께한 20대의 세연은 염정아가 연기한다. 심지어 20대의 진봉도 류승룡이 맡았다. 자칫하면 배우들의 열연이 무색하게 캐릭터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할 수 있는 어려운 방식을 선택한 건 <인생은 아름다워>가 결국 사랑했던 시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지속되고 있다면 그 시간은  지금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시간일 것이기에 긴 시간을 지속해온 인연이란 늘 지금과 같은 인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읽힌다. 첫사랑을 바라보던 10대의 세연과 20대에 만난 진봉과 결혼하고 긴 세월을 함께해온 지금의 세연에게 허락된 두 얼굴은 각기 다른 사랑을 품었던 시간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결국 지금의 삶은 지금의 얼굴로 살아가는 법이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늘 타인을 위한 훈계에서나 유용할 뿐, 자기 삶에는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지 못해서 미안한 사연은 세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영화로 돌아온다. <인생은 아름다워>도 그런 영화다. 그리고 이런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는 건 그런 후회가 인생에서 한 번쯤 지나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터널이기 때문 아닐까. 매 순간 현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리석은 순간은 늘 지나고 나서야 모질게 남는 법이다.

    그럼에도 그런 자신을 뒤늦게 깨닫고 좀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앞선다면 그나마 나은 삶일 것이다. 언제쯤 세상을 다 알지, 얼마나 살아봐야 알지는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소중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그 무엇이나마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사는 데까진 살고, 사랑하는 데까진 사랑함으로써.

    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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