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바야흐로 얇은 복고풍 눈썹의 시대!

2022.11.17

by 송가혜

    바야흐로 얇은 복고풍 눈썹의 시대!

    만국 공통, 지금은 연필로 그려낸 듯 얇은 복고풍 눈썹의 시대. 한국과 미국의 <보그> 뷰티 칼럼니스트 2인이 이 반체제적 눈썹 유행을 살폈다.

    ⓒ 2022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AN ANGLED

    상의는 짧고 눈썹은 에지 있어야 대접받는 시대가 돌아왔다. 이른바 엑스틴(X-teen) 세대라 불리는 나에게 Y2K가 낯설진 않지만 미우미우 크롭트 니트에 잘 어울리는 1990년대 눈썹은 여전히 난도가 높다. 당시는 기술적이고도 전복적인 화장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도전각’이다.

    ‘사랑보다 깊은 색’ 밍크 브라운 립스틱, 무너지지 않는 커버력의 트윈 케이크, 불꽃의 그림자 같은 갈색 눈두덩! 1990년대는 어려 보이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던, 진짜 여자 어른들의 전성시대였다. 그중에서도 드라마 <종합병원> 신은경, <마지막 승부> 심은하, ‘포이즌’ 엄정화, 라네즈 김지호 등의 ‘갈매기 눈썹’은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일필휘지, 붓으로 한 번에 그려 넣은 듯 얇고 깔끔하다. 이런 힘 있는 눈썹이 30년 만에 돌아온 데는 런웨이 트렌드가 일조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행하던 편평하고 도톰한 눈썹은 얼굴을 작고 순하게 보이게 하지만 한 칼이 부족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오가영은 패션뿐 아니라 지난 3년간의 팬데믹 역시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서 우리가 뽐낼 수 있었던 건 눈매와 눈썹뿐이었잖아요. 하관을 버리고도 충분히 인상적인 뷰티 룩이 필요했던 거죠.” 그리고 세기말의 깊고 짙은 색 눈두덩에서 명도만 올려 부드러운 음영을 연출하고 눈썹산을 정교하게 수정해 진화시키면 2022년식 레트로 룩이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말이 쉽다. 눈썹이란 밥 아저씨의 풍경화 같은 것이 아닌가? 남이 하면 쉽고 내가 하면 안된다. 특히 지금까지 해온 순하고 착한 송충이 눈썹을 버리고 대칭이 완벽하고 날렵한 갈매기를 셀프로 띄우기란 꽤나 손 떨리는 일이다. 오가영은 ‘눈썹 칼 대신 족집게’를 외친다. 단번에 셰이프를 깎아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리라는 거다. 초보자가 처음부터 브로우 나이프를 사용할 경우 눈썹의 테두리가 잘려 나가듯 셰이핑되며 손을 댈수록 가늘고 무서운 인상이 된다. “아랫눈썹을 한 가닥씩 뽑아가며 모양을 만드는 걸 추천해요. 하나 정도 잘못 뽑아도 큰 틀을 해칠 일은 없거든요.” 앞머리에서 눈썹산까지 적당한 경사를 그리며 올라간 뒤 고상한 각도의 내리막을 걷도록 뽑고 또 뽑는다. 윗눈썹은? 절대 손대지 마라. 눈썹산은 뽑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려서 만드는 거니까. 정리하자면 본인이 가진 눈썹 자산은 그대로 둔채, 두께는 밑에서 조정하고 각은 위를 채워 맞춘다. 내가 화장을 시작하던 1990년대에 이 방법을 알았더라면 이영애 같은 얼굴로 살진 못했어도 아침에 10분씩은 더 잘 수 있었을 텐데, 뒤늦은 한탄이 몰려온다. 지나치게 가늘어진 눈썹 때문에 커 보이는 얼굴 면적을 줄이려 고전하지도 않았을 테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지만 눈썹 모양이 변하면 얼굴 전체의 메이크업도 호응을 해야 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홍현정은 원 포인트 메이크업을 추천한다. 매트한 라이트 베이지 컬러로 눈두덩을 쓸어주고 치크 또는 립만 강렬한 컬러로 강조한다. “베르사체 런웨이의 모델들, 켄달 제너, 이사마야 프렌치처럼 백모로 탈색한 눈썹에 도전한 경우라면 더더욱 쿨해 보이죠.” 말간 피부에 탈색한 눈썹, 다른 메이크업은 생략한 채 채도 높은 립 컬러를 꽉 채워 그리곤 하는 가수 현아가 모범 샘플이다.

    사실 1990년대 거리에 밝은 컬러의 눈썹을 한 사람은 드물었다. 배꼽을 드러낸 오렌지족도 그 과감함에까진 미치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1990년대 룩이 소환되며 함께 흥하기 시작한 눈썹 탈색의 유행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구심에 대한 답은 ‘시대정신’으로 하겠다. 내가 겪은 1990년대는 사회적 풍파가 몰아치는 동시에 문화적으로는 더없이 다양했다. 올해 아모레퍼시픽이 발행한 무크지 <유행화장>은 그 시절을 “자유와 이념으로 가득 찬 X세대, 그들 만족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라고 회고하며 “당시의 유행은 곧 개성”이었다고 기록한다. ‘우리’의 트렌드가 ‘나’의 뷰티로 개인화되는, 한국 화장사에서 매우 중요한 ‘모먼트’였다. 2022년의 우리가 소환한 1990년대의 얼굴은 화장 그 자체가 아니라 눈치 보지 않는 자유와 용기일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앨범 <마이크 온>으로 컴백하는 마마무의 화사가 칠흑 같은 흑발에 라이트 브라운으로 지워낸 눈썹을 매치한 것은 볼수록 세기말이다. 적당히 전복적이고 대단히 동시대적인 세련됨 아닌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썹 각을 잡고 나니 나이 불문, 좀 더 과감하고픈 충동이 일어 탈색 제품을 주문했다. 모근을 반중력 방향으로 돌려 결을 살려줄 브로우 펌제 역시 추가했다. 그리고 매년 이맘때 열리는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고대한다. 1993년부터 30년간 진행을 맡아온 김혜수는 언제나 ‘그때의 눈썹’을 하고 있었다. 성난 갈매기는 2000년대 들어 낮고 우아하게 날기 시작하고 2006년이 되면 낮고 도톰하게 착륙했으며, 지난 몇 년간은 고운 깃털의 결을 자랑했다. 그리고 드디어 2022년 11월이다. 사극에 출연 중인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만약 레드 카펫에 등장한 ‘언니’의 눈썹이 그때의 그것으로 날아오른다면 나는 격한 추앙을 참지 못할 것만 같다. 백지수 <보그> 뷰티 칼럼니스트

    ARCH MADNESS

    족집게로 눈썹을 뽑으며 즐거웠던 1990년대 내내, 나는 열정적으로 눈썹을 다듬었다. 케이트 모스의 섬세한 아치형 눈썹에 자극받아, 살짝 각진 자연스러운 밤색 눈썹을 슬립 드레스만큼 가늘게 면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굵은 눈썹의 등장으로 뷰티 월드의 역사에서 대단히 충격적이던 챕터를 마감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틱톡에 이 눈썹이 재등장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틱톡에서 풍성하고 자연스러운 원래 눈썹 모양을 갈대처럼 얇은 가닥으로 바꿔주는 인기 AR 필터를 처음 접했을 때, 내 이마에는 전율이 돋고 말았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지?” 유선형에서 벗어나 완전히 잘려 나간 듯하던 2022 F/W 컬렉션 사진을 넘겨 보며 나는 혼자 곱씹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는 ‘강하고, 대담하고, 힘차며, 다른 세상의 아이브로우 룩’을 표현하기 위해 버버리와 베르사체 쇼에서 ‘탈색’이라는 과감한 카드를 꺼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이앤 켄달은 마크 제이콥스의 쇼에서 날렵한 ‘멀릿(Mullet)’ 헤어스타일 아래서 만들어낸 헐벗은 이마를 ‘괴기적이면서 초현대적’이라고 불렀다. 평소 이런 표현은 제이콥스의 디스토피아 꾸뛰르를 입은 다른 모델과 조화를 이루던 슈퍼모델 벨라 하디드와는 크게 연관이 없었다.

    1996년에 태어난 하디드는 인생에서 단 4년만 보낸 1990년대의 모든 것을 미화하곤 하는데,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눈썹의 컴백에도 일조한다. 하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르셀로 구티에레스(Marcelo Gutierrez)의 의견에 따르면 이 복고 스타일의 재유행은 집단적인 정서 상태에 대한 반응일 뿐 아니라, 원조 슈퍼모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트로이 시반, 두아 리파, HBO 인기 시리즈 <유포리아>에 출연한 알렉사 데미(Alexa Demie) 등과 작업해온 그는 “눈썹을 가늘게 다듬고, 탈색하고, 깎고, 염색하거나, 보석과 스티커를 부착하면서 눈썹을 창의적인 캔버스로 사용하는 것은 분노를 촉발하는 시대에 판타지적 장면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존주의는 현실도피주의를 초래하는 법. “고객이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면, 저는 기꺼이 그들에게 눈썹 탈색을 제안하죠.”

    구티에레스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에서 유사점을 발견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세상이 언제 다시 끝날지 모른다고 생각해 판타지 속에서 신나게 살았죠.” 그는 불확실한 시대에는 얇은 눈썹이 압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좋은 쪽으로 고약한 눈썹입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뷰티 히스토리안 루시 제인 산토스(Lucy Jane Santos)도 동조한다. 산토스는 클라라 바우(Clara Bow)가 원조 눈썹 인플루언서였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눈썹은 극적으로 길고 얇은 라인이었다고 설명한다. 1920년대에 활동하던 동년배 영화배우 안나 메이 웡(Anna May Wong)과 댄서이자 가수였던 조세핀 베이커(Josephine Baker)도 마찬가지로 100년 전에 그런 눈썹을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심지어 지금은 뷰티에 관한 관념이 더 빠르게 움직인다. “인스타그램에서 색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을 찾아보세요. 눈썹을 밀어버리거나, 극도로 가늘게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죠.” 리한나가 인정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라이사 플라워스(Raisa Flowers)가 말했다. 플라워스에게 가장 좋아하는 1990년대 눈썹 스타일을 묻자, 그녀는 선뜻 자신의 휴대폰에서 몇몇 룩을 선택해 보여줬다. “릴 킴(Lil Kim),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를 좋아해요. 당연히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의 눈썹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의 아이브로우는 모두 펜슬로 그린 것처럼 얇디얇죠. 게다가 눈썹 주변을 컨실러로 커버해 군더더기 없이 완벽해 보이곤 했어요.”

    “우리는 장난스럽지만, 실험적으로 눈썹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샘 바이서(Sam Visser)는 말한다. 그는 22세로, 역대 최연소 디올 메이크업의 홍보대사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더 예뻐 보인다’는 측면이 아니라, ‘이게 더 멋져 보이네’라는 시각에서 비롯된 눈썹을 연출하고 있어요.” 하지만 파리에서만큼은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객 대부분이 눈썹에 손을 많이 대지 않고 있어요.” 파리 제4구와 16구에 눈썹 살롱 ‘Un Jour Un Regard’를 설립한 사브리나 엘레오노르(Sabrina Éléonore)는 자연스러운 눈썹 모양 다듬기와 가벼운 손질 정도의 서비스만 운영 중이다. “눈썹 라인을 잘 그려준다면, 아주 얇은 눈썹도 정말 예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모양이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피로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인상을 만들 수 있죠.” 뉴욕에서 활동하는 피부과 전문의 도리스 데이(Doris Day) 박사는 오히려 이런 눈썹이 모낭에 트러블을 유발하며 흉을 남기거나 피부 재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인 눈썹 정리는 눈두덩 부분에 영원히 털이 자라지 않는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키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올해 멧 갈라에서 ‘브로우리스(Browless)’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긴 켄달 제너를 보라. 그녀는 본래의 짙은 아치형 눈썹을 자랑하며 애프터 파티를 즐겼다. 결국 메이크업 아티스트 메리 필립스(Mary Phillips)의 눈속임에 불과했던 것이다. 눈썹 성장 세럼과 컨디셔너 카테고리에서 진행되는 혁신적인 발전 덕분에 족집게로 과도하게 뽑아낸 눈썹에도 희망이 생겼다. 구티에레스가 강조하듯, 가장 중요한 건 그저 즐기는 것이다. “그건 하나의 룩이죠. 유일한 룩이 아니에요.” Jancee Dunn <보그 US> 컨트리뷰팅 뷰티 에디터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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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송가혜
    백지수, JANCEE DUNN
    사진
    JAMES COCHRANE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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