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유경 “우주에 살고 있는 킬러를 떠올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과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감독 6인이 참여한 장편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의 주도 아래 장항준, 김종관, 노덕, 조성환, 윤유경 감독이 참여했다. 영화의 의미 찾기부터 도전적인 스타일까지 감독들의 면면이 도드라진다. 그들을 이어주는 큰 줄기는 배우 심은경이다. 심은경이란 페르소나를 향한 감독들의 해석 또한 작품을 보는 재미다. 〈보그〉에서만큼은 심은경이 감독들을 촬영한다.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 윤유경
약 100년 동안 우주를 떠돌던 킬러가 있다. 신인류로부터 제거 대상이 된 그는 자신을 죽이러 온 킬러에게 근사한 식사를 제공한다. 윤유경 감독이 연출한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는 제목을 통해 상상하기 어려운 SF 장르물이고, 냉혹한 킬러들의 대결을 그리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애잔하다. 보고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어진 감정들에 대해 느낄 것이다.
<더 킬러스>에는 어떻게 제안을 받았나.
<M>의 스크립터로 시작해 계속 이명세 감독님의 작품에 참여해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감독님이 연출하신 작품에서 공동 작가로 일했다. 결국 감독님 작품은 직접 쓰셨는데, 그런 과정에서 감독님이 믿어주시고, 기회를 주셨다.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이명세 감독님이 SF 장르로 고민해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원래 준비하던 기획 중에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작품의 쇼케이스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인 ‘킬러’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다고 간주했고, 그래서 우주에 살고 있는 킬러를 떠올렸다.
장르는 SF인데, 그런 장르를 예상할 수 없는 제목을 지었다.
처음부터 고려했던 제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감정이 중요했다. 우주라는 공간은 매우 척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피어날 수 있다는 바람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척박한’이라는 말을 붙였는데, 어딘가 이상해서 ‘언 땅’이라고 설정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크게 세 가지 미션이 있다. 그중 하나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이다. <살인자들>에서 영감을 얻은 포인트가 있다면.
두 명의 킬러, 그리고 그들이 들어간 카페테리아다. 두 명의 킬러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거기에 더해 우주에 카페테리아가 있다면 어떤 곳일지 상상했다. 나는 오래된 펍 같은 디자인을 원했다. 그런데 자료 조사를 해보니 실제 우주선에 그런 공간이 있는 사례는 없었다. 그냥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라는 생각으로 우길 수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부담이 있어서 우주선에 탄 대원들의 아지트로 설정했다. 그들이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면 이곳도 지구의 아날로그적인 분위기가 묻어나지 않을까란 상상이었다.
<살인자들>에 나오는 두 명의 킬러였다는 점이 의외다. 개인적으로는 <살인자들>에 나오는 올레 안드레슨이라는 인물이 가장 포인트가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살해당할 걸 알면서 방에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설명된다.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에서 배우 박호산이 연기한 ‘노장 킬러’가 올레 안드레슨 같은 인물로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도 모르는 그런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살인자들>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그 인물이 나오는 후반부의 이야기였다. 그 부분을 관객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로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묻어온 부분일 것 같다.
<더 킬러스> 프로젝트의 또 다른 미션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다.
호퍼의 그림이 내게는 현실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기묘한 느낌이었고, 그런 부분이 우주선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물론 우주에는 아침과 밤의 개념이 없지만, 그 안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루틴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꽤 닮아 있다고 봤다.
원래 SF 장르에 관심이 많았나.
정통 SF 장르물보다는 사람이 묻어 있는 SF를 좋아하는 편이다. 소설로 예를 들면 정세랑 작가의 작품들이다.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2021) 같은 작품을 보면 매우 SF적이지만 사실 전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다.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를 준비할 때도 감독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료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실제 과학적인 내용보다는 그런 비유적인 공간으로서의 우주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다.
심은경 배우도 이 프로젝트의 미션 중 하나다.
처음부터 정해진 조건이었지만, 신인 감독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걱정됐다. 내가 준비한 이 이야기에 심은경 배우가 100% 만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란 걱정이었다. 그래서 심은경 배우가 이 이야기를 재밌어하면서 흔쾌히 응해줘서 감사했다. 매우 맑은 얼굴을 갖고 있으면서 꾸밈없이 연기하는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은 배우였다. 처음 이 작품에서 심은경 배우가 연기한 신입 킬러는 ‘어리바리한’ 느낌이 강했다. 일부러 심은경 배우가 어릴 때 연기했던 이미지를 더 묻혀서 설정했다. 하지만 심은경 배우를 만난 후에 ‘신입’이라는 이미지보다 ‘신인류’라는 느낌을 더 강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초고에서 쓴 대사를 빼는 대신 그렇게 이 작품의 세계관을 더 드러낼 수 있었다.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노장 킬러’ 역할에 박호산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노장 킬러의 성별은 열려 있었다. 다만 ‘은발’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를 다시 보면서 박호산 배우에게 꽂힌 거다. 머리 색깔뿐 아니라 그분이 갖고 있는 애잔한 느낌이랄까. 또 전직 킬러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는 멋도 중요했다. 제안을 드렸더니, “보통 나한테는 악역 연기나 코미디 연기를 요구하는 편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런 레이어를 떠올렸느냐”고 하셨다. 함께 일하는 게 행복했다. 박호산 배우와 심은경 배우는 너무 다른 장점을 갖고 있고, 성향도 달랐다. 신기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두 배우의 성향이 어떻게 달랐나.
인물들의 전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썼다. 그런 내용을 박호산 배우에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나는 그거 안 들을래. 난 이 사람의 외로움을 알 것 같아. 날 믿어줘” 이렇게 얘기하셨다.(웃음) 그런가 하면 심은경 배우와는 계속 이 작품의 세계관을 공유했다. 신입 킬러가 받았을 법한 교육이 어떤 걸까를 상상하면서 자신이 찾은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전에 연출한 단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2014)를 봤다. 오랫동안 경영했던 한복집을 포기하게 되는 노인의 이야기다. 그 작품의 주인공과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의 주인공 모두 방치되어 있는 인물로 보였다. 오랫동안 갖고 있던 관심사로 봐야 할까.
맞다. 사람은 어쨌든 생명체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꺼져갈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보게 되는 얼굴 주름이나 백발, 이런 부분이 애잔했다. 조금 더 존중받아도 되는 게 아닌가, 좀 더 오래 있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분들의 가치가 조금씩도 아니고 너무 쉽게 잊힌다.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분들이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장인’인 것 같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오랫동안 한복을 손으로 지은 장인에 대한 이야기다. <언 땅에 사과나무 심기>의 노장 킬러도 여전히 숟가락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장인들을 좋아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해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나.
관객이 이 인물들에게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이 캐릭터들을 둘 다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 이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병진 영화 저널리스트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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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송보라
- 글
- 강병진(영화 저널리스트)
- 스타일리스트
- 김영진(심은경), 신하은·장은아(이명세, 김종관, 윤유경, 장항준, 조성환, 노덕)
- 헤어
- 박내주(심은경), 권영은·박규빈(이명세, 김종관, 윤유경, 장항준, 조성환, 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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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서영(심은경), 김지현·유혜수(이명세, 김종관, 윤유경, 장항준, 조성환, 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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