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이명세 “영화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2024.10.02

이명세 “영화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과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감독 6인이 참여한 장편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 이명세 감독의 주도 아래 장항준, 김종관, 노덕, 조성환, 윤유경 감독이 참여했다. 영화의 의미 찾기부터 도전적인 스타일까지 감독들의 면면이 도드라진다. 그들을 이어주는 큰 줄기는 배우 심은경이다. 심은경이란 페르소나를 향한 감독들의 해석 또한 작품을 보는 재미다. 〈보그〉에서만큼은 심은경이 감독들을 촬영한다.

(왼쪽부터) 김종관이 입은 레더 재킷은 올세인츠(AllSaints), 셔츠는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선글라스는 레이밴(Ray-Ban). 장항준이 입은 수트는 루쏘소(Lussoso), 시계는 해밀턴(Hamilton). 윤유경이 입은 스트라이프 프린트 트렌치 코트, 셔츠는 모스키노(Moschino). 이명세가 입은 브라운 코트는 르메르(Lemaire), 베이지 페도라는 에릭 자비츠(Eric Javits), 선글라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노덕이 입은 재킷, 셔츠는 베르니스(Berenice), 스커트는 잉크(Eenk). 조성환이 착용한 안경은 하만옵티컬(Harman Optical), 시계는 몽블랑(Montblanc).

영화의 본질, 이명세

범법자, 도시 난민, 추방자들이 모여 사는 지하 세계, 디아스포라 시티. 그곳을 찾은 두 명의 킬러. 그들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메뉴를 시킨다는 ‘타깃’을 찾아 식당에 들어선다. 정작 그곳에서 그들은 예기치 못한 낯선 이들과 난장을 벌인다. 이명세 감독의 단편 <무성영화>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형사 Duelist>(2005), <M>(2007) 등을 통해 고유의 스타일과 확고한 미장센을 선보여온 감독의 인장이 이번에도 여실히 찍혀 있다. 영화를 향한 오랜 사랑과 더불어 현시대를 반영한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주도적으로 <더 킬러스>를 기획하고 감독들을 모으고 제작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예술대학교 동문으로서 학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기획하게 됐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주변에 재능 있는 감독들이 있는데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 영화가 점점 더 OTT로 소개되다 보니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갈증을 풀어낼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낸다면, 이후에도 다양한 구성원과 유사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게 내 꿈이다. 콘텐츠는 계속 필요하니까. 능력 있는 감독, 배우, 스타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여러 장르의 영화 만들기를 지속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명세의 셔츠와 브이넥 톱, 팬츠, 코트, 부츠는 르메르(Lemaire), 블랙 페도라는 에릭 자비츠(Eric Javits), 선글라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심은경의 브라운 스웨이드 셔츠, 블랙 레더 벨트는 로렌 랄프 로렌(Lauren Ralph Lauren).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살인자들>이 <더 킬러스>의 각 단편의 출발점이자 주요한 모티브다. 이 소설의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는가.

오래전에 읽었는데 그때부터 ‘이거 정말 영화감이다!’ 싶었다. 이미 여러 감독이 영화화하기도 했지만, 그 가운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학창 시절 만든 단편이 흥미로웠다. 장르적 재미를 넘어서서 뭐랄까, 시대의 불안이 감지된달까. 당대 사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면모가 있다. 이번에 참여한 감독들에게 이 소설을 일종의 큰 틀, 가이드라인으로 제안했다. 저마다의 영감과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투자하는 쪽에서 혹할 만한 매력적인 지점이 필요했는데 이 소설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각 단편이 공유하는 또 다른 지점으로 에드워드 호퍼가 <살인자들>을 읽고 영감을 얻어 그렸다는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식상할 수도 있지만, 고유의 느낌이 좋았다. 도시의 밤,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절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시대의 우리도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팬데믹 시대에 생겨난 불안, 뭔지 모르겠고 알 수 없는 상태. 그 속에서 뭔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더 킬러스>가 앤솔로지, 옴니버스 영화지만 각 영화가 크게 보면 한 편의 영화처럼 보였으면 했다. 소설과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이명세의 셔츠와 브이넥 톱, 코트는 르메르(Lemaire), 블랙 페도라는 에릭 자비츠(Eric Javits), 선글라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심은경의 브라운 스웨이드 셔츠, 블랙 레더 벨트는 로렌 랄프 로렌(Lauren Ralph Lauren).

<무성영화>는 어떤 고민과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나.

그간 내가 만든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관해 질문하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의 질문을 추가했다. ‘과연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이 시대가 너무 답답하다. 영화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 천편일률적인 영화로 가득한 시대. 그 속에서 과연 ‘영화적’이라고 할 만한 게 되살아날 수 있을까. 영화가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을 이 작품에 담았다. 그간 내 영화에서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 소위 말해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것이 어째서 과거의, 고전의 영화 방식과 형식이었을까.

토키(Talkie, 유성영화) 시대, VFX(시각 효과) 그 이상의 기술 시대에 영화가 발전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발전한 것일까. ‘다시 영화를 돌아보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나의 이 질문이 관객에게 잘 가닿기를 바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직접적일 수도 있지만 또 달리 보면 알레고리의 방식일 수도 있다. 무성영화가 주는 말할 수 없는 상태, 그로 인한 답답함과 불안함이 내가 느끼는 이 시대의 상태와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어떤 느낌을 전달한다고 여긴다.

개연성이나 서사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난장처럼 보인다.

말로 할 수 있으면 영화를 왜 찍나. 왜 자꾸만 영화를 말로 설명하려고 하는가.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뒤섞인 것인데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내 영화 <남자는 괴로워>(1995)에서 윤주상이 미친 듯이 말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내게는 대사 내용이 아니라 뭔가를 쏟아내듯 말하는 그 자체가 중요했다. 그때의 그것은 대사가 아니라 사운드에 가깝다. 그런데 내러티브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꾸만 그 대사 내용이 뭐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사운드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사운드의 배치와 운용을 통해 인물들이 어떤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고려했다. 되도록 극장에서 관람하시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심은경을 비롯한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정말 모든 게 잘 맞았다. 촬영 기간은 짧았지만, 모두가 영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아, 이게 바로 영화를 찍는 거지!’ 싶었다.(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로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떤 영화 현장은 열심히는 찍고 있지만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어쨌든 뭔가를 해보자!’는 느낌을 공유하면서 모두가 집중했다.

<더 킬러스>의 어떤 면면을 주목해서 봐주길 바라나.

관객 저마다의 방식으로 6편의 영화를 이리저리 새로 조립하고 꿰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6편의 영화가 개별 영화가 아니라 커다란 한 편의 영화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정지혜 영화 평론가 (VK)

포토그래퍼
레스
피처 디렉터
김나랑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송보라
정지혜(영화 평론가)
스타일리스트
김영진(심은경), 신하은·장은아(이명세, 김종관, 윤유경, 장항준, 조성환, 노덕)
헤어
박내주(심은경), 권영은·박규빈(이명세, 김종관, 윤유경, 장항준, 조성환, 노덕)
메이크업
임서영(심은경), 김지현·유혜수(이명세, 김종관, 윤유경, 장항준, 조성환, 노덕)
세트
최서윤(Da;rak)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