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진화하며 갈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열정적인 뎀나의 구찌.

“구찌를 느껴보세요!(Feel Gucci!)”
쇼가 끝난 후 뎀나는 내일 아침 일어나 구찌를 느껴보라고 말했고, 지금 그대로 실천 중입니다. 룩을 살피며 그가 한 말을 되새기다 그의 의중이 적중했다는 걸 깨달았죠. 아, 구찌는 특정 시대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이것이 구찌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첫 룩을 보는 순간 단번에 톰 포드의 구찌가 떠올랐지만, 그 순간에도 제 머릿속에는 오직 뎀나만 있었으니까요. 옛 모습을 돌아보는 동시에 그리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수차례의 발언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프리마베라(Primavera)! 이번 컬렉션명으로는 ‘봄’이 딱이었죠.
팔라초 델레 신틸레(Palazzo Delle Scintille)에 세운 구찌 쇼장에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Gallerie degli Uffizi)에서 허가를 받아 복제한 로마 조각상 모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층층이 쌓인 좌석 위로 늘어선 대리석 조각상은 그야말로 웅장했고, 그 옛날 이탈리아인이 느꼈을 중압감을 실감케 했죠. 뎀나가 우피치에서 받은 인상이 컬렉션의 출발점이었더군요. 책에서만 보던 ‘비너스의 탄생’을 조우한 뒤 그 아름다움에 매혹돼 르네상스가 만들어낸 예술과 비례, 욕망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고요.

그의 말처럼 이번 쇼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 몸을 강조하는 옷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타이트하고 쫀쫀하며 야들야들하게 몸을 감싸는 디자인이었죠. 오버사이즈의 대가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뎀나는 “10년 동안 저는 똑똑한 디자이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구찌에서는 감정적인 영역에서 창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감정이 북받쳤어요”라고 말하며 이번 결정에 만족했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인 그런 패션”이지만 괜찮다고요.
컬렉션 전반에는 섹시함이 흘렀습니다. 몸에 딱 붙는 얇고 유연한 스타킹 소재의 흰색 민소매 드레스로 문을 열었죠. 다음으로 남자 모델 역시 같은 소재의 민소매 터틀넥 톱, 데님으로 추정되는 흰색 팬츠를 입고 일자로 걷기 위해 애썼죠. 근육 배치도를 눈으로 그릴 수 있을 법한 남자 모델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고요. 이는 이음매 없이 몸에 최대한 밀착되는 재단, 보이지 않는 열접착 마감과 곡선형 밑단 등을 개발한 컬렉션의 완성도를 한껏 뽐내는 장면이었죠.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뎀나의 의도는 분명히 전달되었죠. 아멜리아 그레이의 말처럼 클럽에서 필라테스 수업에 가는 여성을 위한 옷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저처럼 밤 10시만 되면 퓨즈가 끊겨버리는 이들이 아닌 건 확실하고, 런웨이에 오른 모델의 면면도 그랬습니다. Z세대가 열광하는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일론 머스크의 딸인 비비안 윌슨(Vivian Wilson), 알렉스 콘사니, 가브리에트(Gabbriette), 아멜리아까지 차세대 런웨이 슈퍼모델들이 등장했고요.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활동했던 페이크밍크(Fakemink)는 런웨이에 서서 휴대폰을 확인했습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그 모습을 프런트 로에서 지켜보고 있었죠. 왼쪽에 도나텔라 베르사체, 오른쪽에 패리스와 니키 힐튼 사이에서요. ‘아아, 님은 갔습니다.’


뎀나는 구찌를 살아 있는 사람, 즉 “거칠고 다채로운 과거가 있으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호기심 많고, 진화를 갈망하는 존재로 해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레퍼런스는 명확합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톰 포드가 이끌던 관능적인 구찌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구찌는 나이가 들어 과거를 회상하는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열정 넘치고 에너제틱하며 섹슈얼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아쉬울 것도 없는 것이 뎀나는 다양한 체형과 키, 나이대를 두루 아우르겠다는 포부도 실천했습니다. 칼리 클로스가 런웨이를 걷고, 케이트 모스가 과거처럼 섹슈얼한 모습으로 피날레를 장식해서만은 아닙니다. 컬렉션은 총 다섯 챕터로 나뉘었으며, 레깅스나 트랙 수트와 함께 선보인 테일러드 수트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죠. 브이넥 레더 재킷이나 흐르는 듯한 실루엣의 블레이저와 길게 뻗은 트라우저, 슬릿이 들어간 미니스커트와 길거나 짧은 코트가 구찌의 시크함을 드러냈습니다. 거의 모든 모델은 구찌 가방과 함께였는데, 특히 구겨지는 가죽으로 만든 재키 백이 쿨했죠.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에서 영감을 받은 플리츠 플로럴 드레스 라인이나 인조 모피를 활용한 코트와 청바지 조합은 로맨틱하면서도 일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밤을 위한 옷도 있었습니다.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가 스팽글 미니 드레스에 스틸레토 힐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연출하며 구찌 우먼으로 변신했죠. 엉덩이가 보일 법한 뒤태의 아찔하고도 반짝이는 이브닝 드레스는 이것이 구찌라고 속삭였고요.
로블록스에 빠져 있다는 16세의 뎀나 조카가 구찌에 대해 한 말이 정확했습니다. “구찌가 뭔지 알아? 그건 그냥 브랜드가 아니야. 우리가 어떤 마음인지 표현할 때 쓰는 단어지. ‘구찌한’ 기분이라는 건 뭔가 미친 짓을 하고 싶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이야.” 그렇죠, 구찌는 그런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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