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리실라>의 네 마리 늑대들

브라운관과 뮤지컬 무대, 콘서트 현장을 누비던 네 남자가 뮤지컬 <프리실라>에서 만나 여자가 됐다.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채 화장을 하고 경쾌하게 골반을 흔들며 춤을 추는,
네 마리의 늑대 조성하와 마이클 리, 김다현, 그리고 조권의 관능적인 시간.

조권이 입은 자수 장식 뷔스티에는 비나제이 란제리(Vina J. Lingerie), 블랙 새틴 베스트는 디올(Dior), 와이드 니팬츠는 질 샌더(Jil Sander), 호피 패턴의 킬힐은 스티브 매든(Steve Madden).

벌써 몇 시간째 스튜디오에는 준비가 한창이다. 피사체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은밀하게 비칠 블라우스들과 근사한 실루엣을 그리는 수트, 하늘하늘한 스커트가 뒤섞인 채 빽빽하게 행어를 채우고, 아래쪽에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힐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한쪽에는 열대의 어느 나라에서 채 만개하기 전에 꺾였을 원색의 꽃들이 향기가 거세된 채 숨을 고르고 있다. 약속 시간이 되자 건장한 남자들이 하나씩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도착한 조권은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스튜디오 구석구석을 누비며 재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했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릿결을 휘날리며 들어온 마이클 리는 쉴 틈도 없이 분장실로 들어갔다.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입장한 김다현은 준비된 의상을 보고 손사래를 쳤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댄디한 룩 차림의 조성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제 드디어, 네 남자가 아름다운 옷과 힐과 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줄 시간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뮤지컬 <프리실라>였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2006년 호주에서 초연된 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거쳐 이탈리아, 스웨덴, 캐나다 등에서 뜨거운 환호를 받았던 이 뮤지컬은 간단히 얘기해 ‘트랜스젠더와 드랙퀸의 자동차 여행’ 이야기다. 다소 생소한 스토리도 그렇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와 드랙퀸을 구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블록버스터급 무대와 의상은 전 세계 관객들을 달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여 동안 총 500여 벌의 의상과 60여 개 가발, 200여 개 머리 장식이 등장하며, 길이 10m에 무게 8.5톤에 달하는 버스가 등장해 수천 개의 LED 조명을 달고 360도로 회전한다. 그뿐인가! 마돈나와 신디 로퍼, 티나 터너 등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스타들의 히트 팝 28곡이 쉴 새 없이 휘몰아친다니, 최근 전 세계 뮤지컬계를 점령한 ‘무비컬’과 ‘주크박스 뮤지컬’의 완벽한 결합이다! 드디어 한국에 <프리실라>가 상륙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부터 궁금했던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과연 어떤 배우가 집채만 한 가발을 쓰고, 콧소리를 흘리며, 호피무늬 힐을 신은 채 궁둥이를 실룩거리면서 무대를 누빌 것인가?

왼쪽 김다현이 입은 도복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베스트 오버롤 팬츠는 유돈 초이(Eudon Choi), 진주 장식 화이트 시스루 스커트는 스티브앤요니(Steve J&Yoni P). 마이클 리가 입은 뷔스티에는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 화이트 턱시도 베스트는 바톤(Baton), 반바지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지난 몇 년 동안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스타로 자리 잡은 마이클 리가 제일 먼저 <보그> 카메라 앞에 섰다. 뮤지컬 팬이라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천둥 같은 목소리로 절규하며 ‘겟세마네’를 부르던 예수와 <서편제>에서 자신의 진짜 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동호를 뚜렷하게 기억할 것이다. 남성미가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가 이번에는 드랙퀸이 되어 돌아왔다. “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여성스러운 걸음걸이나 제스처는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생각은 흉내 낼 수 없으니까요. 단순히 새침하게 뜬 눈이나 섹시한 손놀림, 엉덩이를 치켜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남자의 터널을 지나 여자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하죠. 드랙퀸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안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뒤에야 그가 생각하는 방식을 내 것으로 가질 수 있어요. 다행히도 매일매일 조금씩 더 여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스탠퍼드 의대를 졸업했지만, ‘무대가 나를 불렀다’라는 스스로의 표현 그대로, 조금의 고민도 없이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어요. 내 마음과 열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요. 창조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움직이고, 내 연기가 다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니 얼마나 행복한 직업이에요.” 그렇게 10년여 동안 브로드웨이를 누비며 다양한 역할들을 맡았다. 그리고 2006년 <미스 사이공>을 시작으로 한국 무대에 진출했다. ‘아시안 페이스’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그에게 한국 무대는 단순히 피부색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연기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미스 사이공>이나 <왕과 나>를 넘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서편제>에 출연하고, 심지어는 <프리실라>의 주인공이자 아름다운 드랙퀸 틱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틱은 아빠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아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두려워하면서도 행복해합니다. 무대에서는 화려한 히어로지만, 아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저 막막해하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틱이라는 배역에 깊이 빠져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부족한 아빠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과 부담에 늘 시달리니까요.” 세상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눈물짓는 드랙퀸이 부르는 노래라니! 틱이 여덟 살 아들 벤지에게 바치는 노래 ‘Always On My Mind’를 얼른 듣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조성하의 망사 슬리브리스는 스티브앤요니(Steve J&Yoni P), 시스루 턱시도 셔츠는 디올(Dior)

한쪽에서 ‘예쁜 남자’ 김다현도 여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잘 알려진 대로 젊은 날, 밴드 보컬로 활동하며 쇠라도 씹어 먹은 듯 로큰롤 필이 충만했던 그는 뮤지컬 무대로 와서 그대로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한국 뮤지컬 부동의 슈퍼스타로 자리 잡은 그지만, 그중에서도 <헤드윅>과 <라카지>, <M.버터플라이> 등을 통해 선보인 여장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손바닥만 한 얼굴에 자리 잡은 조형적 굴곡은 그를 유독 아름다운 여자로 돋보이게 했고, 아름다운 각선미를 뽐내며 무대를 누빌 때에는 왠지 모를 질투 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점, 또다시 특별한 여자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그에게 큰 부담을 안겨줬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연기하는 버나뎃은 무대에서 내려와 삶을 관조하는 중년의 트랜스젠더 역할이다. “부담감보다는 기대감이 커요. 맨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마음을 사로잡은 역할이 버나뎃이었어요. 화려했던 시절을 보내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생을 바라보는 버나뎃이야말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캐릭터였으니까요. 단순히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서 여성의 섬세한 내면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얼마나 아픈 일들을 겪었는지, 그리고 지금 자기 앞의 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싶어요.”

자, 드디어 여자의 시간이다. 보디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의상으로 갈아입은 남자들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들어오자 곳곳에서 탄식에 가까운 환호가 터져나왔다. 늑대들의 머리에는 그들의 본성을 옭아매기라도 하려는 듯 그물망이 씌워져 있었다. 긴 틈 사이로 빠져나온 젖은 머리들이 동그란 머리와 이마 주위를 물결치듯 흘렀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은 듯이 시선을 돌리던 마이클 리, 그리고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오 마이 갓! 이게 뭐하는 짓이야”를 외치던 김다현은 조명 아래로 들어오는 순간, 바로 여자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내 고양이가 스트레칭을 하듯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손톱을 붙인 손가락은 우아한 곡선을 만들며 고요히 움직였고, 짙은 메이크업에도 빛을 잃지 않는 눈은 끈적하게 카메라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드랙퀸 틱의 눈빛 깊숙한 곳에선 슬픔이 차올랐다. 화려했던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쓸쓸히 무대 뒤편으로 내려온 버나뎃이 고개를 떨구며 먼 곳을 응시하자 숨이 막힐 듯 비애가 밀려왔다. 한편, 뷔스티에로 꽁꽁 동여맨 몸 안에선 식스팩을 자랑하는 근육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2시간 반에 이르는 러닝 타임 동안, 타는 듯한 긴장을 잃지 않고 쉼 없이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관리하는 그들의 몸에는 나이테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근육이 훈장처럼 남았다. 덕분에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표정을 달리하는 보디라인은 짙은 화장과 대비를 이루며 그로테스크한 무드를 만들어냈다. 팀 버튼이 만들어낸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동화를 엿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마이클 리가 입은 시스루 톱은 스티브앤요니.

“그런데, 잘하고 있는 건가요?” 배우들은 끝없이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여자의 눈에는 그들이 충분히 여자가 되었음이 보였다. 분장실 거울 너머로 다른 배우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확인하고, 힐끗힐끗 서로의 의상을 훑으며 코끝을 찡그리거나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묘한 동질감마저 느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질투 어린 긴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좀더 연륜과 여유가 필요하다. 블랙 플레어 스커트 아래로 슬리퍼를 신은 채, 가랑이를 쩍 벌리고 앉아 커피를 마시던 조성하에게 다가갔다. 아마 이 배우라면 이 모든 상황을 관조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여유요? 지금 저에게 그런 거 없어요. 하이힐을 신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조권을 보세요. 마이클과 다현 씨는 제가 봐도 예뻐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네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지요. 내가 아무리 애를 쓴들 흉내라도 낼 수 있겠어요? 그래서 나는, 나만의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가감 없이 솔직하게.”

사실, 이번 캐스팅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그가 합류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황해>의 야비한 아저씨가, <성균관 스캔들>의 근엄한 정조가, <왕가네 식구들>의 순정남 고민중이 골반을 흔들며 콧소리를 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흥미롭지만, 솔직히 좀 의외였다. 무명 배우로서의 지난했던 시절을 견디고 마침내 ‘국민 사위’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그라면, 꽃중년의 빛나는 왕관을 쓰고 좀더 왕좌를 누려도 좋으련만! 조성하는 이번 뮤지컬에서 김다현, 고영빈과 함께 ‘큰언니’ 버나뎃을 연기한다. 여심을 흔들었던 묵직한 저음은 그렇다 치고 “꽃중년일지언정 꽃미남과는 한참 거리가 먼” 그가 보여줄 트랜스젠더의 모습은 어떨까? 게다가 그에게는 이번 작품이 뮤지컬 데뷔 무대다.

김다현의 컷아웃된 소매가 섹시하게 드러나는 시스루 블루종과 팬츠는 구찌(Gucci).

“버나뎃은 아주 다양한 구석을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화려했던 시절과 퇴락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삶을 대하는 자세도 남다르지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로맨틱한 부분도 있고요. 단순히 여성적인 연기뿐 아니라 유연성과 힘, 상상력도 필요한 역할이지요. 하지만 하루하루가 멘붕,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어요. 여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해보기는커녕 얼굴에 분칠을 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사람이 아침부터 밤까지 하이힐을 신고 뛰고 있다니까요! 노래며 춤이며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무대 아래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무대 위에서 부족함이 드러난다면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잘하는 척하거나 거짓말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정면 승부죠.”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을 때, 이 기상천외하고 난해한 역할이 그에게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레드 카펫을 앞두고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송일곤 감독에게 서 전화가 왔어요. 오랫동안 고생 많았던 형, 비싼 와인 하나 시켜서 스스로를 위해 멋지게 축배를 들라고. 그러고 보니 정말 단 한 번도 나를 위해 선물을 한 적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결국 와인을 시키지 못했죠. 그게 나예요.” 그날 이후, 몇 번을 참고 삭히고 다시 생각하다가 단 며칠이라도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선언하려던 그때 <프리실라>가 다가왔고, 이 바보 같은 배우는 버나뎃의 매혹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하루 종일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뛰고 있는 것이다. 아, 거스를 수 없는 배우의 숙명이여!

그리고 이제 막내 조권의 차례다. 이미 다양한 콘서트 무대를 통해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던 아이돌이 정식으로 여장 연기를 맡게 되었으니 안팎으로 기대감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수많은 아이돌들이 엉성한 신비주의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동안에도 빛나는 예능감을 선보이며 스스로 틀을 깨고 나온 그는, 이제 드디어 화려한 뮤지컬 무대의 한복판으로 왔다. 1년 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그는 최연소 헤롯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반응은 놀라웠다. 조권은 단 몇 분의 연기만으로도 관중을 휘어잡았다. 연말 뮤지컬 어워드에선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다. 사실, 넘치는 끼와 재능을 가진 그가 뮤지컬 무대에 이제야 등장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아시다시피 지금 뮤지컬계에선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찬사와 비판을 두루 받아내며 고군분투 중이다. “오래전부터 너무나 이 무대를 열망했지만 신중하고 싶었어요.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기대 이하였다거나 하는 반응이 온다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정말 열심히 하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을 때 도전해서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 제 공연을 반드시 매진시키고 싶거든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이 깜찍한 아이돌은 적절한 타이밍을 선택하는 지혜마저 갖춘 것이다. 이번 역할은 <프리실라>에서 퍼포먼스를 전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주인공, 아담 역이다. 온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적 게이 아담은 극 중에서 끝없이 사건을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지만,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을 무릅쓰며 생을 뜨겁게 사랑하는 매혹적인 캐릭터다. 그가 이번에도 잘해낸다면 그야말로 한국 뮤지컬계가 건져 올린 보석으로 오래도록 빛을 발하며 사랑받을 가능성이 크다.

조성하가 입은 슬리브리스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스트라이프 패턴의 시스루 톱은 푸시버튼(Pushbutton). 조권이 입은 화이트 턱시도 베스트와 팬츠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오늘의 촬영을 위해 10cm가 넘는 아찔한 힐을 신은 그는 걸음걸이부터 이미 아담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듯하다. 스키니하지만 잘록한 허리선, 오랜 노력으로 다져진 멋진 상체가 상상 속 아담을 카메라 앞으로 불러들였다. 어쩌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판타지를 부르는 아름다운 육체와 모성애를 자극하는 얼굴을 가진 이 배우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제대로 보여줄 완벽한 기회일 것이다. 전투를 앞두고 있는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흥분되어 있다. “누가 뭐래도 이 역할을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어요. 그야말로 올인이에요. 가수로서 노래를 불러왔지만 뮤지컬 무대는 엄연히 달라요. 가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은 같아도 뮤지컬은 훨씬 더 드라마틱해요. 역할에 깊이 빠져야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하루하루 갈수록 몰입도가 깊어져요. 저는 마돈나의 ‘Material Girl’을 부르며 나오는 제 등장 신이 너무너무 기대가 돼요.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 그리고 모두를 열광시키는 노래! 지금도 그 신을 그리면 가슴이 뛰어요. 아, 버나뎃과 틱, 아담까지 세 주인공이 함께 ‘Colour My World’를 부르는 신은 정말 사랑스러워요. 셋이서 붓을 들고 프리실라 버스를 그려나가는 장면인데, 연기하는 내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그 행복감은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예요.” 가장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해 가장 마지막으로 촬영을 마친 조권은 피곤에 지쳐 물기를 잃어버린 눈을 억지로 크게 뜨면서도 자신의 촬영 컷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나서야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저의 아담은 가장 섹시한 아담이 될 거예요. 기대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조명이 꺼지고 쇼는 끝났다. 짙은 화장을 하고 서로를 탐닉하며 관능적인 미소를 흘리던 네 주인공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남자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장을 말끔하게 지워낸 조성하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을 담아낸 아름다운 주름이 있었고, 마이클 리는 선한 눈빛에서부터 단단한 남자의 기운을 발했다. 김다현의 예뻤던 얼굴에선 남성미 넘치는 강인한 선이 되살아났다. 조권의 맑고 뽀얀 피부는 그가 아직 푸른 청춘임을 드러냈다. 배우가 가장 위대한 순간은 바로 지금, 비현실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찰나가 아닐까 싶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그토록 난해하고 아름다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