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북카페

무더운 여름, 잠시 쉬어갈 곳을 찾는다면 우리 동네 북카페는 어떨까?
스타벅스보다 안락하고, 교보문고보다 향기로운 새로운 북카페들이 문을 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취재차 상암동 엠넷 방송국을 향하는 길에 조금 늦겠다는 PD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막연히 공원을 산책하자니 여름 뙤약볕이 두렵고, 방송국과 맞닿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어서려니 비스트와 인피니트를 연호하는 소녀들로 야단법석일 게 뻔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 2번 출구로 나와 그늘을 따라 주변 골목 탐색에 나섰다가 발견한 곳이 북카페 ‘북바이북’. 처음엔 작은 동네 서점인 줄 알았다. 여닫이문을 당기자 삐뚜름한 목재 책장(이것은 컨셉!)과 함께 맞은편에 가지런히 놓인 귀여운 차탁과 스툴이 시선을 붙들었다. 책장을 문학 소설로만 채운 것이 특징인데, 다분히 30대 자매 사장의 독보적 취향이 반영된 컬렉션이었다. 일본 북카페를 섭렵하며 특색 있는 공간을 꾸리고자 했다는 그녀들은 트렌디한 에이블커피그룹의 원두를 공급받아 맛에서도 소외되지 않는 카페를 꾸려가고 있었다. 맛없는 커피로 악명 높은 삼청동과 가로수길 유명 북카페에서 교훈을 얻은 듯했다. 엿과 양갱도 판매한다. 구입한 책을 반납하면 정가의 80%를 적립금으로 돌려준다. 덕분에 다른 책을 구입하거나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동네 어르신도 환영할 운영 방침 아닌가! 5m 근방에 지난 6월 문을 연 2호점은 크림 생맥주까지 메뉴판에 올려놓았다.

최근 청담동에 문을 열고 트렌드세터들을 불러 모은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1층을 꿰차고 있는 북카페 역시 성인을 위한 식단표가 눈길을 끈다. 책 한두 권을 꺼내 들고 너른 소파에 엉덩이를 붙인 우리가 고작 범상한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으리란 걸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햇살 좋은 오후, 자연광이 스며드는 쾌적한 북카페에서 보드카를 넣은 앱솔루트 커피와 뉴캐슬 브라운 에일 맥주를 홀짝이며 여행책 몇 권을 넘기다 보면 “어른이 돼도 술집 말곤 갈 데가 없다”고 투덜댔던 과거가 미안해질 지경이다. ‘여행 도서관’의 부설 카페답게 몇몇 커피는 스노우피크 브랜드의 캠핑용 잔에 담겨 나오는 센스도 이곳만의 특징. 탐나는 세계지도와 여행 아이템을 판매하는 트래블숍과 2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행 도서관의 놀라운 셀렉션까지 훑어보다 보면, 북카페가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플랫폼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태원처럼 소란한 거리에서도 북카페는 거의 유일하게 한갓진 여유를 안겨주는 장소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각오한 채 길을 나서도 스타벅스조차 빈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목격하면 미간이 찌푸려지게 마련이다. 이럴 땐 앤티크 가구 거리 사이, 청화아파트 상가 2층에 자리한 북카페 ‘아무아(A Moi)’를 찾으면 된다. 아무아는 불어로 “도와주세요”라는 뜻이기도 하다. 제법 외딴곳에 위치한데다 공간도 널찍한 탓에 한가로운 여유가 느껴진다. 앤티크 탁자와 가죽 소파로 제법 멋을 냈고, 한 병에 2만원 하는 비교적 저렴한 와인까지 구비하고 있다. 덕분에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동네 젊은 아티스트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보기 드문 해외 리빙 서적과 디자인 도서를 욕심껏 펼쳐볼 수 있으며, 당연히 책을 구입할 수도 있다.

중국인 관광객까지 들끓는 홍대는?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갖춘 동네 서점으로 지지를 얻고 있는 서교동 ‘땡스북스’가 있다. 최신 인디 잡지부터 갓 출간된 인문학 서적까지 각별한 선택이 돋보이는 책들을 눈치 없이 읽을 수 있다. 커피 맛으로 소문난 북카페는 아니지만, 이곳만큼 유유자적하게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공간도 이 동네에선 드물다. 인기에 힘입어 가로수길과 삼청동에 분점까지 열었다.

사실 연남동부터 합정동까지 소위 ‘홍대 앞’으로 일괄 표기되는 동네는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의 격전지기도 하다. 출판사만큼이나 덩치 큰 서가로 유명한 문학동네의 ‘카페 꼼마’부터 작가와의 만남이 활발히 이뤄지는 창작과비평사의 ‘인문 카페 창비’, 시인 백석의 시 제목을 간판으로 내건 다산북스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자음과모음 출판사 1층에서 중고책 벼룩시장을 펼치곤 하는 ‘카페 자음과모음’, 매월 첫 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픈마켓을 여는 디자인북 출판사의 ‘북카페 정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북카페는 자사 출판물을 중심으로 10~50% 할인해주고, 그 어떤 카페보다 적극적으로 손님들이 노트북과 휴대폰을 연결할 수 있도록 콘센트를 제공한다는 학구적 공통점을 가졌다.

무더운 여름, 잠시 쉬어갈 곳을 찾는다면 우리 동네 북카페는 어떨까? 얼마 전 리뉴얼해 다시 문을 연 삼청동의 터줏대감 ‘진선북카페’나 남다른 핫 스폿으로 자리매김한 광화문의 ‘퓨어아레나’, 대학로의 대표 북카페 ‘타셴’처럼 동네마다 자리한 북카페 하나쯤 저장해둔다면 나의 일상이, 당신의 서울 나들이가 한 뼘쯤 느긋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적어도 모양을 내기 위해 책꽂이를 채웠거나 서가의 특징을 도무지 눈치챌 수 없는 ‘카페베네’나 ‘민들레영토’ 같은 북카페 스타일의 프랜차이즈와는 엄연히 다르다. 새로운 우리 동네 아지트에서 우리는 책과 함께 제법 어른스러운 휴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