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를 찾아서

어느 겨울 새벽, 1960년 소설 〈앵무새 죽이기〉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하퍼 리는 화려한 성공 뒤편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돈도, 명예도 다 내려놓은 쓸쓸한 죽음이었다.

어느 겨울 새벽, 1960년 소설 〈앵무새 죽이기〉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하퍼 리는 화려한 성공 뒤편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돈도, 명예도 다 내려놓은 쓸쓸한 죽음이었다.

하퍼 리(Harper Lee)에겐 평생 한 남자가 있었다. <인 콜드 블러드>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을 쓴 트루먼 카포티다. 둘은 미국 앨라배마 주 먼로빌(Monroeville)이란 작은 도시에서 함께 자랐는데, 거칠고 남성적인 성격의 하퍼 리가 예민하고 섬세한 트루먼 카포티를 지켜주는 관계였다. 둘은 오리와 거위에게 먹이를 주며 놀았고, 카포티가 성인이 된 뒤엔 책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트루먼 카포티는 <뉴요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하퍼 리를 조수로 고용해 함께 일했다. 당시 둘이 함께 조사한 살인 사건은 이후 <인 콜드 블러드>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과감한 필체와 사회에 대한 지적, 그리고 인종 문제 해결을 위해 글을 써온 하퍼 리는 미국 사회에 대한 고발자였고,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운동가였다. 1960년 서른다섯 늦은 나이로 <앵무새 죽이기>를 쓰기까지 그녀는 잡지 의 편집자로 일했다. 당시 그녀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하퍼 리의 삶을 이야기하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은둔이다. 그녀는 <앵무새 죽이기>의 대대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책이 출판된 직후 집을 나서지 않았다. 하퍼 리는 어릴 적부터 조울증을 앓기도 했는데, 늘 방어적이었고 항상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하퍼 리의 오랜 이웃 존스는 “넬(하퍼 리의 본명)은 방어적이었어요. <앵무새 죽이기>는 확실히 넬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옮겨다놓았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20세기 최고의 소설을 써놓고도 주목받는 걸 꺼렸고, 사람들 앞에 나와 발언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하퍼 리는 결국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하퍼 리의 책을 “20세기 베스트셀러이자 클래식한 작품”이라 호평했던 출판사 J.P. 리핀콧(Lippincott)은 “그녀의 펜이 얼었다”고 씁쓸한 한숨을 쉬었고, 프랑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자신의 운문 ‘워스트워드 호(Worstward Ho)’에 “세상의 모든 늙은 것, 시도해봤지만 실패했고, 다시 시도해도 다시 실패했다”고 썼다.

사실 엄밀히 말해 하퍼 리의 책은 <앵무새 죽이기> 외에 한 권이 더 있다. 집필 55년 만에 발견된 <파수꾼>이다. 이 책은 1957년 하퍼 리의 방 안에서 발견됐는데 <앵무새 죽이기>의 시퀄 격의 내용이었다. 아동문학가 마이클 브라운의 지원으로 습작했던 이야기로 <앵무새 죽이기>의 20년 후쯤을 그린다. 당시 편집자였던 테이 호호프는 “이 원고가 소설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등장인물들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입체적이었다”고 호평했다. 흑인 인권 운동이 한창인 시대에 부녀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양심을 묻는 하퍼 리의 필력은 미국에서 초판 발행 부수 200만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고, 이후 그녀에게 퓰리처상을 안겼다. 미국 남부 시골 소녀의 뜻밖의 성공이었다.

<앵무새 죽이기>의 이야기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서 출발한다. 경기 침체 여파로 피폐해진 미국 사회는 사회 계층, 인종 대립이 첨예해졌고, 이웃도 의심하는 흉흉한 분위기가 되었다. 하퍼 리는 이 대립의 드라마를 긴장감 가득히 그려냈는데, 괴담을 빌려 은둔하는 이웃을 묘사하는 대목은 명장면이다. 윌리엄 포크너, 테네시 윌리엄스, 카슨 매컬러스 등과 같은 학교인 아메리칸 사우스를 졸업했지만 하퍼 리의 글은 철학과 명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실제 경험으로 에피소드를 썼고, 사회를 느끼며 이야기를 꾸렸다. 하퍼 리가 갖고 있던 작은 목표는 “작은 타운, 중산층 남부 생활의 어떤 기록을 남기는 거”였다. 오프라 윈프리의 매거진에서 하퍼 리는 “얼마나 모던한 생활과 격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노트북, 아이팟, 아이폰의 풍요 속에 산다. 나는 빈방에서 홀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세상과 밀접하게 소통하려 노력했지만 끝내 줄어들지 않았던 고립감은 하퍼 리가 평생 이겨내지 못한 과제다. 그녀는 부커상(Booker Prize) 시상식에서도, 2007년 대통령상을 받는 자리에서도 짧은 인사말만 남겼다.

하퍼 리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장 시끄러운 건 역시 그녀의 재산 분할 문제다. <앵무새 죽이기>로 하퍼 리가 벌어들인 돈은 저작권료 10억을 포함, 부대 수입까지 430억이다. 미국에선 그녀의 재산 문제 관련 재판의 뉴스를 보도했는데, 법원은 하퍼 리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유언장 비공개를 명령했다. 작가의 내향적인 성품을 지지하는 판결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자신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양한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읽는다는 게 인상적이다”라고 썼다. 소설의 대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하퍼 리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빠르고 자비로운 죽음을 희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나에게 용기를 줄 정도로 충분히 좋아해줬으면 싶었다.” 결국 은둔 작가 하퍼 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