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해나,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책 5
땅에 착실히 발붙이고 사는 소설가. 성해나 작가를 그렇게 부르고 싶다. 그는 등장인물들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공감할 군상으로 묘사한다. 신기를 잃은 30년 차 박수무당이라든가, 한국 음식을 일절 먹어본 적 없는 이민 3세대, 일본군이 새긴 문신을 꽃 문신으로 덮은 할머니와 서울대를 나왔지만 시골에서 소박한 삶을 사는 삼촌, 그 외에도 아동 학대 사건으로 추락한 촉망받던 영화감독이나 임용 고시에 여덟 번 낙방한 젊은 여성,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가, 원정 출산을 강요하는 엄마 등. 문제적 인물은 나와 다름없고, 때로는 가족이며, 나아가 우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회로를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면 비포장도로든 험준한 산길이든 우리 사회의 굴곡진 곳곳에 당도한다. 그는 그저 풀을 베고 돌을 들어내 겨우겨우 길을 내며 물을 뿐이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건 괜찮냐고, 그런 일을 보지 않았느냐고, 당신도 알았던 거 아니냐고. 궁지에 내몰린 쥐의 심정이 되어 그녀의 질문을 하나씩 삼키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반드시 한 번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책을 덮고 숨을 고르게 된다. 사건에 매몰되지 않는 객관적 시각으로, 그렇지만 소설이란 장르의 힘을 빌려 감정의 서사를 구성하는 작가의 드라이빙 솜씨에서는 자신만만함, 혹은 험난한 곳이라도 길을 내겠다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소설가의 사명감이 돋보인다.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는 이제 1990년대를 이끌던 유명 여성 작가들 뒤에서, 차세대 주자라는 수식을 달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이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후, 2024년과 2025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신인상을 휩쓸었다. 2024년에는 예스24에서 진행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그 기세를 몰아 현재 <혼모노>가 5주 연속 1위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성해나 작가를 키운 책은 무엇일까. “인생 책은 매번 경신되기에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작품을 꼽아보았습니다.” 소설처럼 단정하고 차분한 어조의 회신이 왔다. “사실 꼽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되도록 그동안 추천하지 않았던 책 위주로 선정해보았어요”라는 말과 함께.
2025년 8월, 성해나 작가가 추천한 다섯 작품이다. 시대정신을 기본으로 사랑과 연대가 가득하다.
#1.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작가는 <난쏘공>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마음을 벼려 집필한 이 소설 덕에 많은 이들이 노동을 존중하고, 소외된 이들을 그저 연민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은 채 주체로 바라보는 사회 흐름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나의 소설에도 그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추동케 하는 소설이다.” – 성해나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2008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30주년을 맞아 한겨레와 나눈 인터뷰에서 조세희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300쇄를 찍은 한국문학 최초 작품’. 이 문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만, 읽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책을 뒤져보니, 새로운 것을 넘어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놀람의 연속이다. 1978년에서 2025년까지, 세상이 개벽해도 ‘고전’이란 이름 아래 난장이라는 명함으로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한다.
#2.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주먹질과 따귀가 일상’이 되고, 인간이 ‘개나 당나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용소 안에서 프리모 레비는 희미하게 비치는 한 점의 빛을 면밀히 포착한다. 다층적이라 더 이기적인 인간이 가끔은 질리기도 하지만 진창 속에서도 구원을 찾고, 억압과 탄압을 겪으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이들의 서사를 읽다 보면 날 선 마음이 금세 물러진다. 아, 이게 인간이었지, 하며.” – 성해나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인간인가>는 저자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보낸 11개월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화학자로서 대학 졸업 후 파시즘 저항운동을 벌이다 1943년 12월 체포되었고, 1944년 2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1945년 1월에 해방된다. 당시 수용소에서는 3개월을 버티기가 어려웠다고 증언한다. 책은 1947년 발행되었지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0년 후였다. 책에는 나치의 잔행뿐만 아니라 수용소 내 유대인 특권층에 대한 폭로도 포함됐다. 죽지 않기 위한 인간들의 몸부림, 그 속에서도 선행을 베푸는 단 한 명이 끼치는 영향력, 죄의식, 두려움, 분노 등 모든 것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3. 이길보라 <반짝이는 박수 소리>
“<언두>를 집필할 때 참고했던 도서. 농인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코다 여성 ‘이길보라’의 에세이다. 입술 대신 얼굴 근육과 손짓으로 말하는 이들. 그것을 기꺼이 아름답다고 칭하는 그들의 딸.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익혀가는 마음으로 아껴 읽었던 책이다. 소수자를 향한 경계와 벽견을 우리는 언제쯤 거둘 수 있을까, 생각하며.” – 성해나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의 이야기로, 이길보라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다. 제목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양팔을 들고 손바닥을 좌우로 돌리는 농인의 박수 갈채를 의미한다. 입 대신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는 이길보라 감독은 시각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 사이에서 자라나며 두 세계를 잇는 다리로서, 세상을 두 가지 시야로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몰랐던 농인의 세계에 빛을 드리운다. 가령 제1언어가 한국 수어인 사람에게는 한국어 자막이 외국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나, 손과 얼굴의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여 정확하게 서로의 의사를 표현하고 감정을 담아내는 수어의 특별함과 아름다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언젠가 양재시민의숲에서 봤던 농인들의 체육대회가 떠올랐다. 다들 ‘심판이 잘못봤네’, ‘공을 잘못 던졌네’, 어찌나 수다스러웠는지. 침묵에 가려진 환한 미소를 여러분도 만나보길.
#4. 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짓다’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나, 다수의 작가들이 소설 창작을 집짓기에 비유하는 것처럼 문학과 건축은 같은 몸을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 건축서를 읽으며 작법을 익히기도 하고, 읽기에 지칠 때는 건축 작품집을 꺼내 맥락이나 순서에 개의치 않고 보는 편이다. 안도 다다오의 책도 그중 하나다. 그의 강단이나 엄격한 자기 관리에도 감흥을 받지만, 그보다는 자연과 인간을 느슨하고도 섬세하게 잇는 그의 철학에 경탄하곤 한다. 콘크리트 건축물에도 빛을 담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맹지를 여지餘地로 살리는 사람. 그의 건축서를 읽다 보면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 성해나

노출 콘크리트, 빛과 물. 이 세 가지만으로도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첫 자서전이다. 고등학생 때 프로 복서로 권투 세계에 입문했지만 높은 벽을 실감한 후, 트럭 운전과 막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세계를 돌며 건축에 입문하게 된다. ‘학력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 사회에서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건축의 길을 걸어온 반생은 순풍에 돛 단 배하고는 거리가 먼 어려움의 연속’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건축에서는 고난보다는 세상 순리를 알아낸 도인의 여유로움 비친다. 어두움은 빛이 만드는 것임을, 물은 흐르는 것임을,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안도 다다오를 몰랐던 이들에게 오히려 더욱 놀라울 책.
#5. 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의 글을 읽으면 늘 부끄러워진다. 나의 깊이는 너무 얕고, 깨어 있는 시선을 위해선 더 오랜 통찰과 섬광 같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는 떠다니는 새털구름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전쟁의 아픔을 떠올리고, 히피, 집시처럼 이름을 잃은 이들의 역사를 언어를 통해 되찾아준다. 세상을 향한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통찰을 지닌 사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얻은 용기와 믿음을 당신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 성해나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존 버거의 답이 담겨 있다. 책은 존 버거가 생의 후반부에 쓴 11편의 에세이와 그의 드로잉을 엮은 것이다. 자신의 유일한 조국을 ‘언어’, 즉 말이라 표현한 그는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조국인 영국을 떠나 평생을 약자를 위한 글을 쓰기 위해 살았다. 결국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평생 자신이 곱씹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온 생각(연대와 사랑)을 ‘언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말미에는 ‘우리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 하는데, 결국 자신의 언어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소설가 성해나의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책 5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이길보라 <반짝이는 박수 소리>
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존 버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24, 이성과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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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이것이 인간인가
2007,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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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반짝이는 박수 소리
2022,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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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2009,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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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2017,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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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혼모노
2025,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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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보그> 웹은 특별한 도서 리스트를 작성 중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독서광 셀럽과 디자이너, 작가에게 인생의 한때마다 영향을 준 책을 소개해달라 요청하고 있죠. 책이 삶에 주는 영향력, 기쁨과 동력, 영감에 관해 널리 알리고 공감하고 싶어서요. 이름하여 #독서예찬입니다. <보그>와 함께 독서 예찬론자의 길을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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