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8월을 통과하는 한여름의 책 6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를 이끄는 출판 마케터, 조아란 부장이 2025년 8월부터 매달 <보그> 독자를 위해 책을 추천합니다. ‘텍스트 힙’이라는 트렌드에 기대서라도 많은 사람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책을 추천해달라 졸랐습니다. 그 화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여름을 통과할 책입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 세스지 지음 / 전선영 옮김(반타)

어린 시절 <특급 공포체험 쉿!>이나 <공포특급> 시리즈를 즐겨 본 사람들이라면, 혹은 <파라노말 액티비티>처럼 페이크 다큐 형식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모큐멘터리(Mocumentary,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 현실 효과를 높인, 연출된 다큐멘터리) 소설이 여기 있다.
작가는 일본의 소설 창작 사이트 ‘가쿠요무’에 긴키 지방에서 일어난 괴담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 무서운 이야기가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며 결국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실존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반복해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와 인터뷰, 독자 제보, 온라인 게시판의 글과 댓글 등 다양한 포맷의 조각이 엮이면서, 한 편의 공포 자료집이자 특집호 같은 구성을 이룬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경계가 흐릿할수록 공포는 점점 더 깊어진다.
대구 고스트북스에서 우연히 만난 이 책은 처음부터 표지에서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최근 유튜브에서 본 일본 와카야마 여행객 실종 사건 영상과 맞물려 뭔가에 홀린 듯 집어 들게 됐다. 계산하시던 서점 대표님마저 “이거,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제일 무서웠어요”라고 말씀하셔서 이미 기대가 컸는데(기대 이상이었다. 정말 무서웠다) 8월 13일 국내에 영화로도 개봉 확정되었다. ‘모쪼록 깊이 들어가지는 마시길.’
<꽤 낙천적인 아이> – 원소윤(민음사)

최근 가장 힙한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있다면, 아마 원소윤일 것이다. 서울대 출신, 채식주의자, 이제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소설가 데뷔까지 해버린 꽤 무서운 신예. <꽤 낙천적인 아이>는 마이크 하나에 기대 무대에 서는 ‘말로 웃기는 사람’이 어떤 유년을 지나왔는지를, 시니컬하지만 유쾌하게, 고단하고 슬프지만 낙천적으로 풀어낸다.
그녀 못지않게 평범하면서도 엉뚱한 가족. 독실한 할아버지는 미운 사람에게 벌 내려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엄마는 재소자 상담 봉사에 나가 아빠의 뒷담화를 열심히 한다. 오빠는 타고나길 웃긴 사람으로,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조문객을 잠시나마 기껍게 해줄 만큼 좀 웃기는 사람. 그 한가운데서 자란 소윤은 가족 모두의 치부와 장점을 명석하게 관찰하고, 유쾌하게 자신을 키워간다.
소윤이 ‘꽤’ 낙천적인 아이가 된 이유(그 ‘꽤’라는 단어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의 무게라는 걸,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잘난 척을 대놓고 해서 오히려 덜 잘나 보이는 묘한 유머, 서울대 출신답게 똑똑하고 스탠드업 코미디언답게 유려하고 솔직한 문장은 최근 읽은 소설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서울대를 졸업했어요. 아, 못 들으셨어요? 저는 서울대 출신입니다. 대박이죠. 끝날 때까지 서울대 얘기 스무 번은 더 할 거예요. 저는 서울대 출신입니다. 저희 집은 유서 깊은 블루칼라 집안이고요. 그러니까 저를 좀 보세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번 보세요. 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에서 완전히 미끄러졌습니다. 여러분, 기술을 배우세요. 근데 저는 제가 블루칼라 집안 출신인 게 좋아요. 좀 든든하달까? 참고로 ‘죄수복’도 블루칼라인 거 아시죠?”

<여름에 더 좋은 소설 (워터프루프북)> – 박솔뫼, 이유리(민음사)

여름이면, 그냥 사두면 좋은 책이 있다. 바로 ‘워터프루프북’.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진짜다. 완전 방수되는 책. 수영장이나 바닷가, 욕조에서도 양손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말 그대로 여름에 최적화된 책이다. 읽기 좋은 것도, 들고 다니기 좋은 것도, 여름이 딱 제철인 책.
그런 책 안에는 역시 여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박솔뫼 작가의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는 아버지를 따라 계곡에 갔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아이들의 터덜터덜 귀갓길을 그린다. 칸쵸와 감자깡, 시원한 물소리, 참외 한입, 뙤약볕 아래 풀 냄새까지. 여름의 감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유리 작가의 ‘비눗방울 퐁’은 비눗방울이 되는 약을 먹은 연인과의 마지막 여름을 그린 이야기다. 사라지기 전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대학 시절 구 여친 부모님이 여름마다 보내주던 참외를 다시 먹는 일. 수소문 끝에 둘은 구 여친의 감자밭에서 일을 돕고, 저녁이면 참외를 까먹으며 이별을 준비한다. 무더위와 슬픔이 감도는 시간 속에서도 어딘가 청량하고 투명한 하루가 흐른다. 책의 안도 여름, 겉도 여름. 올해의 워터프루프북은 말 그대로 여름에 더 좋은 소설이다. 새로운 여름의 독서를 원한다면 꼭 사야 할 책.
<언월딩 : 아마존에서 배우는 세계 허물기> – 김한민(워크룸프레스)

여름의 긴 휴가를 위해 우리는 1년을 준비한다. 오랫동안 여행지를 마음속에 그리며 상상하고, 그 기대는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진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크든 작든 늘 상상과 다르게 다가온다.
작가이자 번역가, 만화가이자 기후 활동가인 김한민. <그림 여행을 권함>에서는 관찰하는 여행을, <아무튼, 비건>과 <탈인간 선언>에서는 환경과 존재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그가 이번에는 아예 ‘세계’의 바깥으로 떠났다. 아마존에서 1년 넘게 머물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은 이번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의 틀을 되묻는 인류학 보고서다.
<언월딩 : 아마존에서 배우는 세계 허물기>는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살아온 세계의 구조(자본, 개발, 진보, 효율)를 해체하는 이야기다. 김한민은 브라질 서부 혼도니아주의 카리푸나족과 함께하며, 그들의 숲과 삶을 통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세계의 기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드러낸다. 16세기 식민 개척자들의 침입 이후 종말을 살아온 이들은 지금 이 시대 가장 앞선 ‘세계 붕괴 전문가’들이다. 기후 위기, 생태 파괴, 전염병, 소멸 위협이 더는 뉴스가 아니라 일상인 지금, 김한민은 묻는다. “우리가 아직도 이 세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세계-짓기(Worlding)’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면, ‘언월딩(Unworlding)’은 그 세계를 허무는 일이다. 단순히 포기하거나 물러서는 게 아니라, 지금의 세계를 다시 생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는 적극적인 시도다. 저자는 말한다. “세계-짓기는 세계-허물기에 달려 있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유일한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면, 그 밖을 상상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가장 절실한 여행일지 모른다. 아마존에서 돌아온 김한민은 그곳에서 시작된 세계 해체의 서사를 담담히 들려준다. 환상을 품고 떠났다가, 멸망을 먼저 마주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세계를 짓는 이들의 이야기를. 올여름 낯선 세계를 마주하고 싶다면, 이보다 더 지적인 논픽션은 없을 것.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 이다(반비)

X에서 무려 3,794만(8월 4일 기준) 조회 수를 기록한 이벤트가 있다. 책의 출간을 맞아 출판사에서 진행한 ★도 시 관 찰 이 벤 트★. 관찰하지 않으면 결코 몰랐을, 직접 발견한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도시 풍경을 인용 알티로 자랑하는 이 이벤트에는 무려 6,500건이 넘는 참여가 몰렸다. 인용 알티를 구경하다 보면 정말이지 다종다양한 도시의 귀여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banbibooks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는 말 그대로 작가의 관찰로 채운 도시의 기록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세상은 점점 더 끔찍해 보이고, 혐오와 이기심은 점점 더 만연하며, 매년 더워지는 여름을 지나며 지구는 곧 망할 것만 같다. 이런 회색빛 감상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무력감이 들 때마다 이다 작가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관찰한다.
이다 작가의 눈과 손을 거치면, 늘 스쳐 지나가던 거리도, 만원 지하철도, 짜증 섞인 도시의 경고문도 어쩐지 뭉클하고 유쾌하게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뭐든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더 자주 피식거리게 되고, 조금은 덜 무기력해진다. 이 계절, 한 사람이라도 더 ‘도시관찰 필터’를 장착하고 우리 도시의 사랑스러움과 이야기를 발견하면 좋겠다.
<예수의 생애> – 찰스 디킨스 지음 / 황소연 옮김(민음사)

북미에서 <기생충>의 흥행 기록을 뛰어넘은 K-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킹 오브 킹스>. 무려 10년에 걸쳐 제작된 이 작품은 지난 7월 16일 한국에서도 개봉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책이 바로 찰스 디킨스의 <예수의 생애>다.
이 책은 찰스 디킨스가 출판을 목적으로 쓴 작품이 아니다. 평소 낭독회를 즐기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자상한 아버지였던 그는 “아버지의 생각을 기록으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딸 메리 디킨스) 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디킨스 사후에 발표된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예수의 생애>는 이야기 형식의 성경 동화로, 아이들에게 법이나 도덕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는 용서’의 의미를 전하고자 한 디킨스의 따뜻한 의도가 담겨 있다. 나에게 잘못한 타인을 용서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함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디킨스는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며, 넘어지고 다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미움과 죄의식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풀어낸다.
민음사 판본에는 예수의 생애를 다룬 명화 63점이 함께 실려 있다. 르네상스 거장 다빈치와 라파엘로, 프랑스의 ‘철학자 화가’ 푸생, 스페인의 독창적인 화가 엘 그레코, 루터의 벗 루카스 크라나흐 등 미술계 거장들의 시선을 따라 예수의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종교인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마음을 배워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이야기를 곁에 두면 좋겠다.
민음사 조아란 부장이 추천하는 8월의 책
세스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원소윤 <꽤 낙천적인 아이>
박솔뫼, 이유리 <여름에 더 좋은 소설 (워터프루프북)>
김한민 <언월딩 : 아마존에서 배우는 세계 허물기>
이다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찰스 디킨스 <예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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