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을 탐험가로 만드는 디자이너, 페트라 파게르스트룀

2026.06.19

구경꾼을 탐험가로 만드는 디자이너, 페트라 파게르스트룀

트렌드도, 지역도, 공통된 미학도 없다. 파편화된 세계를 반영하듯 2026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들은 패션이란 언어만 공유할 뿐이다. 그들에게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법을.

섬네일 디자인 한다혜, 허단비

어쩌면 보이는 것이 전부라 할 수 있는 최근의 패션계에서, 이면 탐구에 몰두하는 디자이너가 떠올랐다.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디자이너, 스칸디나비아 <보그> 편집장이 전 세계 <보그> 편집장들에게 추천한 신예,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석사 졸업 쇼의 비하인드 영상으로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게 만든 인물이자, 2026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로서 방점을 찍은 페트라 파게르스트룀(Petra Fagerström)의 이야기다.

착시 효과를 낸 듯 움직일 때마다 색상과 질감이 달라지는 ‘렌티큘러 플리팅(Lenticular Pleating, 입체적인 주름 기법)’ 옷이 화제를 모았는데, 이를 두고 파게르스트룀은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본 이들에게 건넨 보상”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페트라 파게르스트룀의 세계관을 압축한다. 제대로 보지 않고는 알 길 없는 속내까지 파고드는 습성. 마음의 거리를 조절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태도 말이다.

@petrafagerstrom

런던 컬렉션 데뷔 무대가 그 증거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던 유년 시절에서 영감받아 ‘여성 코치’를 주제로 했다. 혹독하고 야망 넘치는 그녀들을 두고 페트라는 영광스러웠던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성숙한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뿐인가? 삶의 스토리가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인물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미학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보다 해부하는 걸 즐기고, 표면을 통해 내면을 읽으려 하고, 어디를 보라 가리키지 않고 찬찬히 살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그녀의 시선은 패션 언어가 되었다. 인간적인 건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시선에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옷 너머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페트라 파게르스트룀을 만났다.

알고 있나? 스칸디나비아 <보그> 편집장이 다른 <보그> 편집장들에게 당신을 ‘주목해야 할 라이징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그런 말을 해주셨다니, 정말 몰랐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단박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디자이너가 된 기분은 어떤가?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 입점하고, 찰리 XCX 같은 스타가 당신의 옷을 입는 그 느낌!

갑자기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선을 받는다는 게 꽤 묘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내 브랜드의 옷을 입고, 내가 만든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모습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스텝이 무척 기대된다.

주목받는 데 익숙할 것 같기도 하다. 원래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 무려 5세부터 16세 때까지. 완벽한 전성기를 앞둔 순간이었을 것 같은데, 그만두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렇게 재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다만 굉장히, 굉장히 고집이 셌다. 그런데 열네다섯 살 무렵 텀블러(Tumblr)를 즐겨 하면서, 관심사가 패션으로 옮겨갔다. 열여섯 살 때는 패션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다.

@petrafagerstrom
@petrafagerstrom

데뷔 컬렉션명이 ‘내가 널 위해 해준 게 얼마인데(After Everything I Did For You)’다. 어린 시절 혹독했던 여성 코치를 떠올리며 지은 제목이라고 들었다. 나였다면, 그 말을 자신에게도 했을 것 같다. “내가 노력한 게 몇 년인데!” 하고 말이지. 진로를 바꿀 때 두렵지 않았나?

10대 시절, 그토록 많은 노력을 쏟아부은 일을 그만둔다는 게 물론 쉽지 않았다. 코치가 실망할 거란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패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 나이에 진로를 바꾸고 싶어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러니 패션을 향한 사랑이 내내 이어져,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컬렉션에선 여성 코치를 ‘영광스러웠던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성숙한 여성’으로 표현했다. 자부심, 야망, 희생이 혹독한 코치 역할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 탐구하고 싶었다고? 사실 자신의 욕망을 딸이나 제자에게 투영하는 건 이상적이진 않은데, 어떤 포인트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했나?

‘엄격한 코치 유형’은 인물 묘사 방식에서 종종 악역으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내게는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서 강한 권위를 지닌 여성일 뿐이다. 제자를 향한 야망은 때로 어긋난 방향으로 가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을 판단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초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Petra Fagerström 2026 F/W RTW

Petra Fagerström 2026 F/W RTW. GoRunway

Petra Fagerström 2026 F/W RTW. GoRunway

그래서인지 이 지점이 가장 궁금했다. 어떤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나? 난 당신이 모든 여성은 아름답다는 등의 지루한 답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아름다움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나는 주로 사람과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이미지일지라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느껴지지 않으면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한 인터뷰에서 “내게 패션은 ‘페르소나’를 창조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페트라 파게르스트룀이라는 페르소나는 어떻게 탄생했나?

내게 패션이란 여성이 존재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일이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도 한 명의 여성으로서 세상에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정의하는 데서 출발했다. 내가 동경하는 여성상을 구축해나간 셈이다. 그래서 작업을 하며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탐구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더불어 내게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지나치게 가볍고 나이보다 어려 보이게 만드는 패션에 늘 답답함을 느껴왔기에, 여성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실루엣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대개 엄격한 실루엣은 순종적이거나 단정함 같은 이미지로 이어지곤 한다. 나는 그 고정된 틀을 깨고 싶다. 겉모습과 반대되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처럼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petrafagerstrom

사실 컬렉션에선 모델들의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캣워크 위에서 마주 선 모델들이 중앙으로 지나가는 다른 모델을 쳐다본다. 압도적이면서도 서사적인 시퀀스였다.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스토리와 옷 중 어느 쪽이 먼저인가?

그 컬렉션에선 ‘코치와 제자’,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역학 관계를 탐구했다. 그래서 모델들이 관객이 아닌 서로를 위해 퍼포먼스를 펼치도록 연출했다. 스토리와 옷은 동시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보통 컬렉션은 페르소나의 어떤 면모를 탐구하고 싶은지에서 출발하고, 주제를 연구하다 보면 스토리가 옷과 함께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옷의 구조와 의복 자체가 좋다. 그래서 피스들이 구조와 디테일 면에서 내러티브와 호응하며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게 무척 중요한 기준이다.

렌티큘러 플리팅이 당신 디자인의 시그니처다. 원단의 주름을 직접 하나하나 잡아서 만든다고? 홀로그램처럼 보이기도 하고 트롱프뢰유 효과도 난다. 이 기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나?

보는 위치,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결코 박제되거나 고정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특히. 내 작업 전반에 적용되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라는 개념과도 이어진다. 첫눈에 보이는 표면이 있는가 하면, 움직임이나 각도의 변화를 통해서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한 벌의 옷에 이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러니 이 기법은 사람들에게 ‘어디를 보라’고 지시하기보다,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본 이들에게 보상을 건네는 일’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서브스톰(Substorm)이라는 스웨덴 회사와 AI 기반의 디자인 툴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AI로는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고. 확신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고백하자면 내가 언제든 대체될 거 같아서 더 궁금하다.

일종의 연구 프로젝트였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AI는 디자이너의 부차적 업무를 덜어줌으로써 창의적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디자인 영역에서 앞으로 AI의 역할이 점점 커질 거라는 건 분명하다. 좋든 나쁘든. 하지만 패션은 ‘삶의 경험(Lived Experience)’과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이고, 디자이너의 역할은 인간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건 삶의 경험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들에게 던지는 <보그 코리아>의 시그니처 질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종 우승자는 누구인가?

이번 파이널리스트 모두가 정말 뛰어난 분들이다. 그들 사이에 이름을 올린 것이 영광이다. 그러니 예측은 기꺼이 <보그 코리아>에 맡기겠다!

@petrafagerstrom

@petrafagerstrom

2026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

황혜원

황혜원

웹 에디터

<보그> 웹 에디터로 주로 패션 트렌드를 다루며, 웹사이트 전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쓰는 걸 좋아합니다. 돈이든 글이든.

더보기
포토
Courtesy of Petra Fagerström, Instagram, GoRunwa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