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은 지리적 결과가 아니다”, 아닐 파디아
트렌드도, 지역도, 공통된 미학도 없다. 파편화된 세계를 반영하듯 2026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들은 패션이란 언어만 공유할 뿐이다. 그들에게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법을.

편견 많은 인간은 환경적 차이에 쉬이 굴복하고 만다. 누구의 딸이고, 어디서 태어났으며, 무엇을 보고 자랐는지가 인간을 구성하는 요건이라고 생각하는 중년이 된 걸까 싶어 우중충해지는 요즘이었다. 아닐 파디아(Anil Padia)는 그런 내게 “탁월함은 지리적 결과가 아니라, 인간적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땅의 질보다, 성장하는 인간에 주목하겠다는 선언. 인도 혈통의 케냐 출신 디자이너는 런던과 파리에서 각각 패션을 공부했다. 이후 케냐로 돌아와 만든 브랜드, 요시타 1967(Yoshita 1967)을 통해 꾸뛰르 수준으로 끌어올린 크로셰 룩을 선보였고, 마침내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 과정을 두고도 많은 이들이 ‘지리’를 이야기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탁월함은 지리적 결과가 아니니까. 극도로 세밀한 바늘로 만든 크로셰는 뜨개질보다 잘 직조한 면처럼 보인다. 4년간 훈련과 실험을 통해 27명의 장인이 만들어낸 성과다. 앞으로도 장인들에게 공예를 전수하고, 동반 성장하며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 그. 전례 없이 수상하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피력하며, 그 또한 땅이 결정짓는 것 이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아닐 파디아를 만났다.

축하한다. 케냐 출신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다. 가족이 무척 자랑스러워하겠다.
정말 감사하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직업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확신을 얻었달까? 기술적이고도 장인적인 우리 작업을 국제 무대에서 인정해준다는 건 정말 큰 보람이다. 엄청난 동기부여도 된다. ‘일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사람들에게 닿고 있구나’ 싶다.
브랜드 이름이 흥미롭다. 요시타(Yoshita)는 고모 이름이면서, 산스크리트어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 여성’이라는 의미라고?
맞다. 본질적으로 ‘여성’을 뜻하지만, 여성이란 형태 너머 ‘여성이 품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고모는 1967년 봄베이, 지금의 뭄바이에서 태어나셨는데, 삶이 녹록지 않았다. 당시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신체 때문에. 사회에서 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이는 정신적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함께 작업하는 여성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을 마주하고 나니, 고모의 목소리를 내 작업의 중심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크로셰가 럭셔리해 보이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듦새가 뛰어나다. 기술을 꾸뛰르 수준으로 끌어올린 비결이 궁금하다.
비결이 하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실험’이다. 컬렉션 전체가 면사, 거울 조각, 방울까지, 세 가지 요소로만 구성된다. 소재 수급의 한계, 부족한 인프라, 패턴 메이킹 지식의 부재 같은 현실적 제약이 우리를 세 가지에만 집중하게 만들었고, 오히려 이 좁은 틀 안에서 한계를 탐구할 수 있었다. 또 가느다란 실과 극도로 작은 크로셰 바늘을 사용한다. 바늘이 얼마나 작은지 보면 정말 놀랄 거다.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가는 실과 바늘의 조합만으로도 훨씬 섬세한 느낌을 낼 수 있고, 패브릭에 가까운 질감을 만들어냈다.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쓰던데, 스튜디오는 어떻게 구성되나? 소개하고 싶은 파트너나 장인이 있는가?
혼자였던 적이 없다. 열여덟에 인턴으로 들어간 케냐 브랜드 쿠루(Kooroo)에서 캐서린을 만났고, 내가 브랜드를 만들 때 마침 일을 찾고 있던 터라 둘이서 브랜드를 꾸리게 됐다. 당시 파리를 오가며 1년에 샘플 7개를 만들 정도로 느린 속도로 진행됐지만,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3명으로 늘어난 후에는 생산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고, 크로셰를 하는 수녀님 그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엔 10명이었는데, 지금은 25명과 함께하고 있다. LVMH 프라이즈 발표 후 대형 리테일과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새 스튜디오도 생겼고, 커뮤니티 안에서 많은 여성을 교육하고, 새 컬렉션도 진행 중이다.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방울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옷에 방울을 단다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실용성에 의문이 생겼다. 방울은 자신의 존재를 꽤 선명하게 알리는 요소지 않나? 당신의 단편영화 <템플 로드(Temple Road)>에서도 방울 소리가 들린다. 방울을 쓰는 이유와 착용성에 대해 말해달라.
방울은 내게 상징적인 물건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비롯해 집안 여성들은 늘 방울이 달린 발찌를 차야 했고, 걸을 때마다 그 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춤에 굉장히 끌렸는데, 여성들이 춤을 추는 축제 날이면 방울 소리로 가득했다. 그 소리는 춤에 대한 나의 갈망과 연결됐다. 남자아이라서 발찌를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다 한 가게에서 방울을 발견했고, 소리와 공예, 기억을 하나로 엮어보고 싶었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 건 예멘, 수단, 파키스탄 등 인도양을 둘러싼 문화권 어디서나 장신구에 방울을 단다는 걸 알게 된 후다. 이는 식민지 이전의 교역로와 연결된다. 종교적 의미도 있다. 영화는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착용성은 솔직히 나 또한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꼼 데 가르송 스타일을 즐겨 입는 파리 친구가 칸영화제에서 우리 옷을 입은 적이 있다. 긴소매에 등이 트인 진저 톱으로 방울이 가득 달려 있는데, 수줍음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는 걸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물론 지금은 3개짜리 방울 링크 대신 하나만 쓰는 방향으로 실험 중이다. 무게도 줄고 소리도 훨씬 은은해 주목받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럼 지금은 방울을 차는가? 어린 시절 꿈이 이루어졌나?
(줌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이게 할머니 반지인데, 작은 방울이 달려 있다. 전통 반지인데 손에 꼭 맞는다.
요시타가 태어난 1967년에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160달러였고, 임금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24%였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다. 옷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옷이 변화를 이끌 수 있냐고? 그렇다. 우린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드는 과정과 맥락이 있다. 우리 스튜디오는 커뮤니티 가치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식사를 제공하고, 공동체 방식을 적용한다. 25명 모두가 서로를 돌본다. 얼마 전 장인 한 분이 소중한 사람을 잃고 힘든 상황에서도 일하러 오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이라면서. 캐서린을 비롯해 모두에게 스튜디오가 아닌 우리 집으로 와도 된다고 답했다. 그 따뜻함이 변화를 만드는 거다. 옷은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금 하는 크로셰 작업을 다른 장인 분야로도 확장하고 있다. 직조, 비딩(Beading) 등 케냐 전역 여성 장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리고 LVMH에서 우리가 위너가 된다면, 그 변화는 더 빨리 올 거다.

당신이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추진하게 만드는 힘과 배경도 궁금하다.
럭셔리라는 단어를 탁월함(Excellence)로 대체하는 것이다. 탁월함은 지리적 결과가 아니라 인간적 노력의 결과다. 함께 일하는 여성들이 열악한 환경을 딛고 럭셔리 수준의 옷을 만들어 세계 무대에 섰다는 것이 그 증거다. 탁월함은 접근성에서 발휘된다. 파리의 메종 데 메티에 다르(Maisons des Métiers d’Art)에서 공예가 어떻게 제도화되고 가치화되는지 보면서, 케냐에는 그런 구조가 없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유다. 지식과 기술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서 디자이너와 패턴 메이커를 6주 동안 나이로비로 초청해 팀을 교육했다. 정부나 기관의 지원이 없으니 우리 스스로 해야 하는 데,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크로셰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 잠깐이었다지만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파리에서 공부했다. 수많은 소재를 다뤄봤을 텐데, 왜 크로셰였나?
크로셰는 개인적 집착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현실적 조건의 결과다. 크로셰는 케냐 여성들 모두 지니고 있는 기술이다. 단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뿐. 이렇게 이미 존재하는 기술로 경제적 안정을 꾀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챕터 방식으로 접근했다. 챕터 1은 크로셰, 챕터 2는 레이스, 실크, 크로셰의 결합이었다. 지금 작업 중인 새 피스를 보면, 아래 부분은 샹티 레이스(Chantilly Lace), 위는 인도의 생실크, 크로셰는 케냐 것으로 구성됐다. 케냐는 나의 집, 인도는 뿌리이고, 프랑스는 훈련의 기반이 된 장소다. 이 세 가지 긴장감을 하나로 엮는 실험을 하며, 전부 손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챕터 3은 남성복이 될 것이고, 챕터 4는 가죽을 소재로 할 예정이다.


브라이덜 컬렉션을 보며 여성의 몸을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루엣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편해 보였다. 당신에게 여성복을 만든다는 의미는?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평생 여성들과 가까이 지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그렇기에 옷을 입을 때 여성이 편안하고 기분 좋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 코르셋을 만들지만, 크로셰 소재라 숨이 막히지 않는다. 여성의 몸 형태를 강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포인트다. 이건 지적인 과정에서 생겨나지 않고, 직관적인 과정에서 비롯된다. 피팅을 할 때 그 점이 특히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한 형태에서 시작해 텍스처, 장식, 디테일을 쌓아가는 거다.
마지막으로, 매년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들에게 꼭 물어보는 시그니처 질문이다. 누가 최종 우승자가 될 것 같나?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됐으면 한다.(웃음) 정말로! 세미 파이널 참가자들의 작업을 보면서 이런 재능 있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겸허해졌다. 모두의 관점이 뚜렷하고, 작업에 의도가 가득했다. 솔직히 누가 우승자가 될 것 같다 말하기 어렵다. 다들 이길 자격이 충분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기길 바라는 건 솔직한 마음이다. 그리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6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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